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요 - 워킹우먼
본문
조규찬은 1971년1월13일생으로 동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무지개\'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박선주와 부른 \'소중한 너\'를 비롯하며 \'따뜻했던 커피조차도\'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등을 히트시켰다. 이번에 흑인음악 냄새가 많이 나는 4집 음반을 냈다.
4집음반
예전의 음반들에 비해 나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옛날에는 억지로 만들어서 노래를 만들거나 소리를 냈지만, 이번 앨범ㅁ에서는 내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애썼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다는 사살을 알게된 것이다. 그림을 전공했는데, 기타를 치거나 그림을 그이거나 하는 일들은 모두 혼자서만 하는 일이다. 옛날에는 혼자서 뭘 한다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굼금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끼 때문이다.
흑인음악과 발라드
애당초에 나의 관심사는 흑인음악 쪽이었따 물론 고등학교 때는 헤비매탈을 좋아했고 그 후에는 \'무지개\'같은 노래도 만들었찌만 이번에도 형들이랑 김형석씨 음반에 \'사랑이란 이유로\' 를 불렀는데, 윽힌음악에 대한 관심은 점점 깊어져 왔었다. 그게 이 비로소 폭발한 거이지, 시류에 영합한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발라드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예전에 비해 자연스러운 음을 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무지개\'
이었는데, 비가 내렸다. 그리고 그 비가 그친 뒤.해질 녘의 긴 햇살이 좁은 아파트 실내로 들어왔따. 그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기타를 튕겼는데, 그게바로 \'무지개\'가 되었따. 아마 다른 친구들과 롤러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고 돌아오다가 기타를 쳤으면 전혀 다른 노래가 나왔을 것이다.
19살,유재하자요세, 그리고 대상
대학1학년 가을에 유지해 가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기타 하나 달랑 들고 지하철 타고 가서 2년동안 연습한 \'\'무지개\'를 불렀다. 나중에 조동진 선배가 \'네가 왜 대상을 받았는지 알아?\'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참가한 사람들 중에 나만 튜닝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역시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아버님(\'무너진사랑탑\' \'닐리리맘보\'등 수없는 히트곡을 남긴 작곡가 조성환씨)은 나에게 음악적 열매를 그대로 주신 분이다. 아버님 덕분에 손쉽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었다. 어머니 (\'내고향\' \'눈길\'등을 부른 가수 유성희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장 어려웠던 시기동안 우 리 형제를 이끄느라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다.
바램이 있다면 이제 그런 어머니가 아무런 풀편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차에 태워서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드리고싶다.
그림
요즘도 가끔 그림을 그린다. 작은 그림들. 한6호 정도 크기의 . 그런 그림들을 연작로 그리면 아주 재미있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것 같다. 게다가 둘 다 표현하는 것이니까.
글:김영수기자
1997.9 워킹우먼
나우에서 퍼왔어여~^^
1990년 박선주와 부른 \'소중한 너\'를 비롯하며 \'따뜻했던 커피조차도\'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깨물었다? 등을 히트시켰다. 이번에 흑인음악 냄새가 많이 나는 4집 음반을 냈다.
4집음반
예전의 음반들에 비해 나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옛날에는 억지로 만들어서 노래를 만들거나 소리를 냈지만, 이번 앨범ㅁ에서는 내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애썼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다는 사살을 알게된 것이다. 그림을 전공했는데, 기타를 치거나 그림을 그이거나 하는 일들은 모두 혼자서만 하는 일이다. 옛날에는 혼자서 뭘 한다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굼금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끼 때문이다.
흑인음악과 발라드
애당초에 나의 관심사는 흑인음악 쪽이었따 물론 고등학교 때는 헤비매탈을 좋아했고 그 후에는 \'무지개\'같은 노래도 만들었찌만 이번에도 형들이랑 김형석씨 음반에 \'사랑이란 이유로\' 를 불렀는데, 윽힌음악에 대한 관심은 점점 깊어져 왔었다. 그게 이 비로소 폭발한 거이지, 시류에 영합한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발라드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예전에 비해 자연스러운 음을 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무지개\'
이었는데, 비가 내렸다. 그리고 그 비가 그친 뒤.해질 녘의 긴 햇살이 좁은 아파트 실내로 들어왔따. 그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기타를 튕겼는데, 그게바로 \'무지개\'가 되었따. 아마 다른 친구들과 롤러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고 돌아오다가 기타를 쳤으면 전혀 다른 노래가 나왔을 것이다.
19살,유재하자요세, 그리고 대상
대학1학년 가을에 유지해 가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기타 하나 달랑 들고 지하철 타고 가서 2년동안 연습한 \'\'무지개\'를 불렀다. 나중에 조동진 선배가 \'네가 왜 대상을 받았는지 알아?\'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참가한 사람들 중에 나만 튜닝이 맞았기 때문이라고, 역시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아버님(\'무너진사랑탑\' \'닐리리맘보\'등 수없는 히트곡을 남긴 작곡가 조성환씨)은 나에게 음악적 열매를 그대로 주신 분이다. 아버님 덕분에 손쉽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었다. 어머니 (\'내고향\' \'눈길\'등을 부른 가수 유성희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가장 어려웠던 시기동안 우 리 형제를 이끄느라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다.
바램이 있다면 이제 그런 어머니가 아무런 풀편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차에 태워서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드리고싶다.
그림
요즘도 가끔 그림을 그린다. 작은 그림들. 한6호 정도 크기의 . 그런 그림들을 연작로 그리면 아주 재미있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것 같다. 게다가 둘 다 표현하는 것이니까.
글:김영수기자
1997.9 워킹우먼
나우에서 퍼왔어여~^^
댓글목록
박근원님의 댓글
박근원 작성일역시 뭐든 기본이 뒷받침 해줘야 잘 될수 있는거 같아요..... 하지만 가끔은 잘못맞춰진 부분을 찾았을때 희열두 좋아요... 내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나혼자 힘으로 스스로 깨우쳤을때..... 정말 그 무엇을 배운거보다 많은걸 느끼게 되지요.....그게 아무리 작은것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