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 가수 조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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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이토록 허무한 것이 사랑일까?

세상에는 사랑을 얘기하는 멋진 말들이 참 많지. 때론 그 사랑이란 말이 너무 많아서 현기증이 나기도 해. 지금 나는 사랑 얘기 한 토막을 네게 들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 그래, 그래서 지금 현기증이 나는 거겠지.

그래 사랑을 한적이 있지.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게 솔직한 이야기겠지. 난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사랑에 대해 참으로 많이 잘못 알고 있었고 또 그렇게 배워왔어.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성내지 아니하며... 뭐 그런거 있잖아.

그런데 이론과 실제는 엄연히 다르더군. 난 끝없이 추락했고 허물어져 갔어. 그녀에 대한 환상이 커질수록 점점 더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느꼈지. 끊임없이 그녀를 찾는 나의 모습을 뒤로하고 그녀는 끊임없이 날 피했지. 무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어.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그녀의 결혼소식을 들었어. 난 슬퍼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몰랐지. 그저 아픔뿐이었고, 그리고 시간이 흐르더군.

가끔 어머니와 있을대 그녀 얘기가 나오면 난 당황스러워. 어머닌 아무 화를 내시지. 아마 내가 아직도 마음이 아플까봐 걱정이 되어 그러시나봐.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나의 호흡에 불어 넣었던 알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힘들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미련같은거 이젠없어. 그 당시엔 죽을 것 같이 가슴이 아팠지만 이젠 추억이라며 웃을 수 있는걸. 그래서 슬프지만 말이야.

눈에서 멀어지면 이렇게 허무하게 잦아든 것이 사랑이었던 걸까? 어쨌든 난 다시 혼자고 그리고 분명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지.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정말 잘 해낼 자신이 있어.

적어도 지금은... 많은 걸 바라진 않을 거야, 그냥 서로 조금씩 조금씩 맞춰 나가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할거야. 사랑은 사랑이라고 믿는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이 아닐까?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그 시간을 함께 했다는건 소중한 거야.

하지만 이런 것도 잊어선 안돼. 그녀도 여자이기 이전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게 아니라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나는 것 말이야.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말이야. 그런 마음이라면 사랑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줄어들지 않을까? 상대방에 대한 환상이 클수록 기대도 커질 테고 실망도 커지겠지. 기대와 실제가 맞지 않을 때 항상 생기는 마찰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기대대로 상대방을 만들고 바꾸려 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면 될 텐데.

사람들은 은연중에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결혼은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해. 서로가 양보하고 맞춰가는 그 과정이 더운 아름다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고 나와 완벽하게 생각이 맞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었지. 그리고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할 거라고 믿어왔어.

그런데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었지. 그런 마음이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말이야. 내가 모든이에게 완벽하지 못하듯 그 누구도 나에게 완벽할 수 없다는 걸 깨닳았어. 이미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보다는, 하나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를 생각해 줄 사람이 진정한 나의 짝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로 맞춰가며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그런 동반자 말이야.

출처 - <96년 6월호 SHES>

댓글목록

김지숙님의 댓글

김지숙 작성일

사랑에 관한 자신의 확고한 생각을 갖고 계신 규찬님이 넘 멋지고 저도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네여
  어디선가 규찬님이 사랑은 받는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에 대해 이제 좀 이해할 것 같아여

장인실님의 댓글

장인실 작성일

규찬님의 말씀 속에는 저 깊은 곳에서 스며져 오는 슬픔이있네요...

김혜영님의 댓글

김혜영 작성일

그는 명실상부한 뮤지션입니다!!
 그의 음악과 그리고 이 기사내용...
 너무나도 일치해 있군요...
 사랑에 대한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규찬님!!
 분명 좋은 사람 만나실거예요...
 제가 기도해 드리죠...

민미정님의 댓글

민미정 작성일

100퍼센트 공감할 수 있는 사랑학개론이구여.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갖고 완벽한 사랑을 꿈꾸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쉽게 시작되지도, 흔히 이루어지지도 않는 거겠죠...(크~ 저의 이 수동적인 어휘들...어쩔 수 없네요..) 스스로 시작하고 이루기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게 사랑일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심이 솟아나고 서로에게 더 근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게 아닐지...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거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먼저 사랑을 베푸는 사람에게만 사랑은 화답한다. 사랑...그 흔한 말의 실천은 어렵기만 할  듯...앞으로도 계속...

이윤희님의 댓글

이윤희 작성일

  정말 찬님께서 좋은 사람 른 만나셨으면 좋겠네요... 찬님이 이젠 마음아프신 일이 없었으면 좋겠구요..